1916년 박상태의 아들 박승화(朴承和)가 편집·간행하였다. 권말에 박승화의 발문이 있다.
6권 3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계명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부(賦) 3편, 사조(詞操) 2편, 시 250수, 권3·4에 서(書) 64편, 설(說) 5편, 논(論) 2편, 문(文) 1편, 해(解) 1편, 계(戒) 4편, 책(策)·송(頌)·녹(錄) 각 1편, 권5·6에 문(問) 2편, 의(議) 1편, 서(序) 11편, 기(記) 9편, 발(跋) 7편, 잠(箴) 2편, 명(銘) 1편, 상량문 2편, 축문 3편, 제문 6편, 행장 3편, 전(傳) 1편, 묘갈명 1편, 부록으로 행장·묘표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의 「설심삼척부(雪深三尺賦)」는 눈이 석자나 와서 통행이 막히고 온 천지가 은세계로 탈바꿈해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는 경지에다, 국가 정세가 일변해 가는데 닥쳐오는 변고를 예측할 수 없음을 비유한 글이다.
시는 강개처절하며, 급변하는 시국으로 인해 배운 학문이 소용없음을 안타까워하며 때를 만나지 못함을 한탄하는 내용이 많다. 「두류잡영(頭流雜詠)」은 지리산의 탁영대(濯泳臺)·산천재(山川齋)·송객정(送客亭)·대원암(大源峰)·천왕봉(天王峰) 등을 유람하며 그 경치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다. 「등남한산성(登南漢山城)」은 남한산성에 올라가서 지난날 병자호란 때의 수치를 생각하고 분개한 심정을 토로한 시다.
서(書)의 「상정재유선생(上定齋柳先生)」과 「상성재허선생(上性齋許先生)」은 당시 영남 지방의 석학 유치명(柳致明)과 스승 허전(許傳)에게 학문하는 방법과 태도에 대해 물은 것이다. 「여장사미(與張四未)」와 「여이한주(與李寒洲)」는 장복추(張福樞)와 이진상(李震相)과 성리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위정척사(衛正斥邪)가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용학도설(庸學圖說)」은 『중용』과 『대학』의 골간을 추려서 도식으로 체계화하고 그에 따른 분류와 해설을 첨가한 것이다. 「구인설(求仁說)」·「찰계혜(察戒慧)」는 학문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그 추진 과정을 설명한 글이다. 「객문(客問)」은 성리와 천도·인도 등 이치에 관한 것을 삼재합일(三才合一)의 원리 위에서 설명한 것이다. 「관선당강회발문(觀善堂講會發問)」은 『주역』·『대학』·『중용』·『논어』의 내용 중 어려운 구절을 가려서 선유의 설을 인용하여 알기 쉽게 설명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