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일제가 대륙침략을 개시하자 함경남도 함흥의 고등보통학교·농업학교·상업학교와 영생고등보통학교·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등 각 중학교 학생대표들이 학생운동의 분산을 지양하고 역량을 집중, 통합하기 위하여 학생공동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 위원회는 같은 해 6월 15일 대대적인 학생반전운동(學生反戰運動)을 전개하기로 하여 격문을 작성, 배포하고 함흥지방 전학생들이 동시에 궐기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일본경찰에 탐지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일본경찰은 도지사의 승인을 받고 영생고등보통학교학생 78명,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학생 4명, 함흥고등보통학교학생 6명, 농업학교학생 2명 등 54명을 검거, 구속하였다.
이 사건은 비록 실패하였으나 각 지역 학생들의 반전시위에 도화선이 되었으며, 한편 일제의 학생운동탄압에 실마리를 주게 되었다. 일제는 붙잡힌 54명을 검찰에 송치하였으나 그 중 13명이 기소되었고, 이들은 모두 집행유예처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