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만주 퉁화(通化)의 친일단체인 조선인민회(朝鮮人民會)의 회장 이동성(李東成)과 이기술(李己述)·한의제(韓義濟) 등이 일본총영사관 퉁화분관의 후원을 받아 무장항일운동을 반대하고 자치를 기한다는 목적으로 선민부(鮮民府)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 독립운동단체인 참의부·정의부로부터 협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당국도 이 단체가 일제에 의하여 조정되는 불온한 단체라 하여 탄압을 하자 표면적으로는 일본총영사관과 관계를 단절하고 중국당국의 후원을 받는 순수한 교민자치기관임을 가장하여 한교동향회로 개편하였다.
이 단체는 무장항일운동은 성공을 기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교민에게 위해가 되므로 오히려 산업과 교육을 발달시켜 안정을 기하는 것이 좋다 하여 독립군을 체포 또는 귀순시켜 일본총영사관에 인도하는 반민족행위를 자행하였다.
그리하여 회원의 의무로서 외부로 여행할 때는 5일 이전에 허가를 받아야 하고, 독립군의 동정 또는 회원 이외의 외부인 여행자를 보았을 때는 반드시 신고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위반할 시는 벌금을 내도록 되었으며 신고자에게는 포상을 주도록 규정하였다.
또 자체내에 경비병을 두어 독립군을 검거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독립군의 토벌로 환인(桓仁)·집안(輯安)·통남(通南)의 조직이 분쇄되었고, 다만 퉁화·통동(通東) 지방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