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인쇄기술을 삼국 및 신라통일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로 나누어 역사적으로 종관(綜觀)한 저서이다. 1책으로 되어있으며, 크기는 세로 22.7㎝, 가로 15.5㎝이다.
이 책은 1974년 탐구당(探求堂)에서 간행하였다. 저자인 김두종은 자서(自序)에서 우리나라 고서목록과 도서해제를 해 놓은 것이 매우 빈약하다고 하였다. 김원룡 교수의 『한국고활자개요(韓國古活字槪要)』와 손보기 교수의 『한국인쇄기술사(韓國印刷技術史)』가 출판되어 한국 인쇄술의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였으나, 고활자 인쇄는 인쇄술 연구의 한부분에 국한된 것이며 인쇄기술사도 단행본이 아니고, 문화사총서의 하나인 과학기술분류사로서 사례들을 간략하게 기술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한국의 과거 인쇄술이 걸어온 자취를 종합적으로 총망라해 보려는 의도에서 인쇄술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고 수집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고대 인쇄술은 일찍부터 중국에서 사본·간본이 도입되는 한편, 조판인쇄술의 발명을 촉진하게 한 불경석각(佛經石刻)과 금동판각(金銅板刻)이 성행함에 따라 점차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전제하면서, 그 발상시기를 7세기 말부터 8세기 초까지의 사이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에서 종래의 학자들이 부인하여 왔던 신라 애장왕 때의 해인사 대장경 간행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신라 말기의 인쇄술에 대해서는 최치원(崔致遠)이 885년(헌강왕 11)에 지은 「대숭복사비명(大崇福寺碑銘)」에서 동왕(東王)이 시(詩)를 인쇄하여 당나라 사신에게 증여한 기록을 처음으로 찾아내어, 당시의 인쇄사정을 추적하는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학문의 관점에서 중국과 우리나라의 인쇄술 기원설과 애장왕 때의 해인사 대장경 개판설은 재고할 점이다. 고려시대의 인쇄사는 초기의 『보협인다라니경』을 비롯한 대장경조조·관판·사찰판·사가판·활자판의 분야로 나누어 인쇄의 발달과정을 구체적으로 고찰하였다. 그 중 초조대장경의 감정은 재조대장경과 가름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척해 놓았고, 또 고려본을 글자체에 의하여 송본·원본 및 독자적 계통으로 구분하는 방법도 여기서 개척하였다. 송본·원본·고려본의 성격 및 특징파악은 미흡함을 느끼게 하지만, 작업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하게 한다.
고려주자인쇄에 관해 그 때까지의 부정적 시각을 긍정적인 면으로 전환시킨 학문적 태도도 후학들이 본받을 만하다. 조선시대의 인쇄사에 대해서는 임진왜란을 기준하여 전후기로 구분한 다음 전기를 3기, 후기를 2기로 세분하여 목판본·복각본·금속활자본·목활자본·신연활자본을 각각 고찰하고, 이를 다시 중앙 및 지방 관판·사찰판·서원판·사가판·방각판의 측면에서 인쇄 사례를 소상하게 망라하였다. 또한, 도활자와 바가지활자에 대한 해명과 금속활자의 주조술까지 포괄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의 인쇄사는 저자가 일찍부터 연구, 개척해 온 분야이므로 저자의 업적이 가장 두드러지게 평가된다.
이 저서는 우리나라 형태서지학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고인쇄사 분야의 학문적 수준을 한 차원 높은 경지로 올려놓은 개척적 저작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