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한민단(韓民團)·한민회군(韓民會軍). 3·1운동 후, 만주 독립운동단체의 국내진공작전과 국내에서의 대응을 전제로 한 독립운동이 재연되자 이에 자극, 고무되어 조직된 단체로 이광택(李光澤)·황병길(黃丙吉)을 중심으로 혼춘현(琿春縣)에서 조직되었다.
회원 및 병력은 200명 내지 500명으로 추산된다. 1920년 구춘선(具春先)이 지휘하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가 간도 일대에서 튼튼한 재정을 바탕으로 막강한 지도력을 발휘하자, 의군부(義軍府)·신민단(新民團)과 함께 그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1920년 5월 의병장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역시 무기와 병참(兵站)의 보급상의 문제로 대한국민회와 합작하였다. 이때 군사조직으로 제1군사령부가 결성되었고 홍범도는 제1군사령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대한국민회를 구심점으로 4개 군단의 연합부대가 구성된 것으로 각 군단의 독자성은 유지되고 있었다. 이 때 한민회는 홍범도의 군사지휘권하에 편성되었다. 한편 1920년 5월부터 만주지역 독립군단의 연합전략이 구상되어 청산리독립전쟁 수행이 구체화되자, 7월 9개 단체의 연합회의에 이광택을 대표로 보내 전쟁에 합류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명월구(明月溝)를 떠나 이도구(二道溝) 지방으로 이동, 10월 21일 사령관 홍범도의 지휘하에 이도구 지역에서의 청산리독립전쟁에 일익을 수행, 큰 전과를 올렸다. 10월 26일부터 일·중연합군 결성에 대피하여 안도현(安圖縣)을 거쳐 시베리아 밀산(密山) 지역으로 후퇴한 뒤 이 단체의 활동은 종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