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대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하와이 한인협성협회,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구미위원부 등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9년(고종 26)
사망 연도
1981년
출생지
황해도 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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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하와이 한인협성협회,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구미위원부 등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황해도 해주 출신. 1902년 하와이로 이주하여 캘리포니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농업에 종사하여 기반을 마련했고, 한가기업회사(韓家企業會社)를 설립하는 등 사업에도 성공해 재미한인의 성공한 사업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하여 위원장을 역임했고, 미주동포들의 성금을 모금해 상해의 임시정부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미국 국무성과 한국인의 여행권제도 폐지를 교섭하는 등 미주동포들의 권익을 위한 활동도 추진하였다. 1936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의 각 지방 대표들이 모여 총회관 건립을 결정했을 때, 총회관 건축위원으로 선임되어 국민회 중앙회관 마련에 크게 기여하였다.

1937년 8월 중국관 내에서 결성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韓國光復運動團體聯合會)의 미주지역 애국단(愛國團) 대표로 참가하였다. 이는 중일전쟁 발발 직후 중국관 내 지역에서 활동하던 민족진영 3당과 미주지역 6개 단체가 연합하여 결성한 것으로, 민족진영 독립운동세력의 연합체였다.

1939년 12월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국민회 대표대회에서 집행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41년 4월에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해외한족대회(海外漢族大會)를 개최하고,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漢族聯合委員會)를 결성하였다. 이는 미주지역 각 단체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것으로, 한시대는 집행부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43년 동지회(同志會)가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탈퇴하자, 집행부 위원장을 맡아 나머지 단체들의 단결과 결속을 추진해 갔다. 1944년 10월 미주지역 13개 단체 대표자들이 로스앤젤레스에 모여 임시정부의 지시에 따라 주미외교위원부(駐美外交委員部)를 개조할 때, 부위원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45년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57개국이 참여하여 국제연맹을 결성하자, 미주지역 각 단체 대표회의를 개최하여 대표단을 구성하고, 대표단의 일원으로 국제연맹 결성대회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자자료집』8(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집필자
한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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