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낮은 야산을 등진 양지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생가가 쓰러져 없어진 것을 1992년에 복원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초가집이며 서향이다.
그 양옆으로 1칸을 달아내어 광과 헛간으로 썼고 울타리는 싸리나무로 만들었다. 바깥에는 흙벽돌로 화장실을 만들었다. 한용운은 1879년에 태어났으며 승려이면서도 독립운동 등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3·1운동때는 33인의 한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다.
또한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을 고취하는데 힘썼으며, 불교의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는 등 불교의 대중화와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 고취에 힘썼다. 1944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