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정숙(靖叔). 한승권(韓承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경우(韓景佑)이고, 아버지는 판관 한영(韓瀛)이며, 어머니는 대사간 정유일(鄭維一)의 딸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5년(광해군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가주서·검열·예조좌랑·지평·수찬·이조좌랑을 거쳐, 이조정랑에 이르렀다. 검열로 있을 때는 춘추관기사관이 되어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617년 예조좌랑으로 있을 때 이이첨(李爾瞻) 등의 사주를 받아 이위경(李偉卿)·황덕부(黃德符) 등과 함께 사학(四學)의 유생을 데리고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을 주창하였고, 그 뒤 대북파의 일원으로 활약하였으며, 특히 이조정랑으로 있을 때는 인사권을 전횡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대북파의 몰락과 함께 폐모론의 수창자로서 주살당하였다. 형 한안국(韓安國), 동생 한정국(韓正國)도 함께 처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