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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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박기섭 의진에서 중대장을 역임한 의병장.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14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65년(고종 2)
  • 출생지황해도 평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흥수 (춘천교육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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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박기섭 의진에서 중대장을 역임한 의병장.

개설

황해도 평산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07년 한국군 강제 해산 이후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할 때 황해도 평산 도평산(桃平山)에서 4,000여 명의 의병이 모여 의병부대를 편성하고, 당시 목천부사였던 박기섭(朴箕燮)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할 때 중대장이 되었다.

황해도 각지에서 여러 번 싸워 많은 적을 죽이자 일본군들이 범과 같이 두려워하였다. 1910년 이진룡(李鎭龍)·김정안(金貞安)과 함께 예하에 500여 명의 병력을 두고 20∼80명의 소부대를 편성하여 지속적으로 일본군수비대와 경찰을 공격하였다.

그 해 2월 해주 부근의 헌병분견소를 습격하고, 또 순사주재소를 불태웠다. 3월에는 이진룡과 함께 80여 명을 인솔하고 계정역(鷄井驛) 서쪽에서 수색나온 온정원(溫井院) 헌병분견소의 일본군과 교전을 하였다.

이후 그들은 일본군의 연락과 보급을 끊기 위하여 경의선 선로에 큰 돌을 놓아 기차를 탈선시키기도 하였다. 1914년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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