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내금위에 소속되었다가 무과에 급제하였고, 1453년(단종 1) 수양대군(首陽大君: 뒤의 세조)이 계유정난을 일으킨 뒤 동교(東郊)에서 군대를 검열할 때, 중위장(中衛將)으로서 군율을 엄중히 한 것으로 포상되었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지병조사(知兵曹事)로서 세조의 즉위에 협력한 공으로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책록되고 청성군(淸城君)에 봉하여졌다. 뒤에 첨지중추원사·병조참의를 거쳐,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안양(安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