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명로(明老), 호는 보산(寶山). 아버지는 한광진(韓光鎭)이며, 어머니는 상산김씨(商山金氏)로 김명휘(金命徽)의 딸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1827년 조경묘별검(肇慶廟別檢)으로 기용되었다. 그 뒤 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사헌부지평을 거쳐 1836년(헌종 2) 이조정랑이 되었다. 이듬해 강령현감(康翎縣監)으로 나갔는데, 민정을 보살핀 공으로 이듬해 해주진관으로 옮겼다.
1841년 선시관(宣諡官)이 되어 해주에 다녀오고, 1843년 자여도찰방(自如道察訪)을 지내고 과만이 되자 향리로 돌아갔다. 1854년(철종 5) 사간원정언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1862년 병조참의가 제수되었으나 역시 부임하지 않았다. 말년에는 보산에 서당을 지어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보산집(寶山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