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개항기 호조참의, 돈녕부도정,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40년 영유현령(永柔縣令)으로 나갔다가 과만이 되자 1843년 사복시판관(司僕寺判官)으로 들어왔다. 그 뒤 재령군수를 지냈는데, 그 때 실수한 일로 파직이 되고 문의현(文義縣)으로 귀양을 갔다.
1855년(철종 6) 다시 사복시첨정에 기용되었다가 이듬해 장성부사로 나갔다. 1865년(고종 2) 종친부전부(宗親府典簿)가 되었고, 1867년 신천군수로 나갔으나 다시 익산으로 유배되었다. 1876년 호조참의에 재기용되었고, 돈녕부도정·오위도총부부총관·공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하석유고(霞石遺稿)』 6권이 있다.
참고문헌
- 『하석유고(霞石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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