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보경(輔卿), 호는 하석(霞石). 서울 출신. 아버지는 현감 한원극(韓元屐)이며, 어머니는 음성박씨(陰城朴氏)로 박준흠(朴俊欽)의 딸이다.
1833년 성균관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837년(헌종 3) 목릉참봉(穆陵參奉)에 기용되고, 이듬해 제용감부봉사(濟用監副奉事)로 옮겼다. 1839년 진하사(進賀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온 뒤 상서원부직장(尙書院副直長)으로 옮기고, 이어서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호조좌랑·종묘서영(宗廟署令) 등을 지냈다.
1840년 영유현령(永柔縣令)으로 나갔다가 과만이 되자 1843년 사복시판관(司僕寺判官)으로 들어왔다. 그 뒤 재령군수를 지냈는데, 그 때 실수한 일로 파직이 되고 문의현(文義縣)으로 귀양을 갔다.
1855년(철종 6) 다시 사복시첨정에 기용되었다가 이듬해 장성부사로 나갔다. 1865년(고종 2) 종친부전부(宗親府典簿)가 되었고, 1867년 신천군수로 나갔으나 다시 익산으로 유배되었다. 1876년 호조참의에 재기용되었고, 돈녕부도정·오위도총부부총관·공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하석유고(霞石遺稿)』 6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