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5년(연산군 1) 건립. 비신의 높이 257.5㎝, 너비 129㎝, 두께 23㎝. 1985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2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화강암으로 만든 네모 받침돌을 얹고, 그 위에 비신(碑身)과 이수(螭首)를 얹었다. 받침돌 4면에는 2단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비신은 대리석제로 많이 마모되어 명문을 판독하기 어려우나 전문이 『청주한씨청원세보』 · 『국조인물고』 등에 실려 있다.
한확의 막내딸로서 덕종(德宗:세조 아들, 성종 부친)의 비(妃)였던 인수대비(仁粹大妃)가 부친의 묘비가 없음을 슬퍼하자, 1494년 4월 성종이 우참찬 어세겸(魚世謙)에게 명하여 비문을 짓게 하고, 한확의 셋째아들 한치례(韓致禮)에게 비의 건립을 맡도록 하여 이듬해 세워졌다.
“襄節韓公神道碑銘”이란 두전(頭篆)과 명문은 성종의 사돈 임사홍(任士洪)이 썼다. 비문에는 여말 선초 이래로 활약했던 한확의 조상에 대한 약력과 그의 행력이 기술되어 있으며, 이어 한치인(韓致仁) · 치의(致義) · 치례(致禮)와 인수대비 등의 3남 6녀, 인수대비와 그 소생인 성종 · 월산대군(月山大君) · 명숙공주(明淑公主)를 비롯한 자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음(碑陰:비신 뒷면)에는 이후 번성했던 후손들의 명단이 앞면 글자보다 좀 크게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