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옥파(玉派).
개항 이후 조선은 1876년(고종 13)과 1880년 두 차례에 걸쳐 수신사(修信使)를 일본에 파견하여 일본의 변화와 국제정세를 어느 정도 파악하였다. 그러나 1880년 원산이 개항되고 일본공사가 서울에 상주하게 되자 일본의 근대화된 문물제도에 대한 좀더 깊이있는 인식이 요구되었고, 나아가 이를 받아들여 개화정책을 추진할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1881년 초 12명의 조사(朝士)와 그 수행원으로 구성된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조사시찰단은 박정양(朴定陽)·엄세영(嚴世永)·홍영식(洪英植)·어윤중(魚允中) 등 12명의 조사와 함께 이들을 수행할 실무자인 수원(隨員) 26명, 통사(通事) 12명, 하인 12명 등 조선인 62명과 일본인 통역 2명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때 함낙기는 참봉으로서 고영희(高永喜)·전낙운(全洛雲) 등과 함께 홍영식의 수원으로 활약하였다.
홍영식을 수행하여 일본육군을 시찰대상으로 삼아 육군성(陸軍省)·참모본부·감군본부(監軍本部) 및 그 소속관서의 제도를 살펴보았는데, 특히 육군의 징병방법과 각 부서의 체제, 제반조규 및 규칙, 병대(兵隊)의 편제, 회계경리, 훈련방법 등에 중점을 두어 조사하고 귀국 후 보고함으로써, 그 뒤 근대적 군사제도의 수립에 참고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