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3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자세한 편집 경위는 알 수 없다.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2에 부(賦) 1편, 시 54수, 서(書) 38편, 권3∼5에 문(文) 2편, 설(說) 8편, 변(辨) 3편, 서(敍)·녹(錄)·서(序)·논(論)·사(詞)·도(圖) 각 1편, 제(制) 2편, 기책(朞策)·조(調)·기(記)·유사·묘지명 각 1편, 권6·7에 부록으로 녹(錄) 2편, 만사 1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의 「몽부(夢賦)」는 인생의 모든 것을 꿈에 부쳐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나타낸 것이다. 시는 분량이 많지 않으나 학문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독대학(讀大學)」·「논인(論仁)」·「예악(禮樂)」·「독서(讀書)」 등이 대표작이다. 「영회(詠懷)」·「회인(懷人)」·「정좌(靜坐)」 등에서는 저자가 추구한 삶의 일단을 살필 수 있다.
서(書)의 「여강재송선생(與剛齋宋先生)」은 송치규(宋穉圭)에게 보낸 글로, 인물성동이(人物性同異)·선기옥형(璿璣玉衡)·기삼백(朞三百)에 대해 자기 소신을 밝혔다. 「답정후존중서(答鄭侯存中書)」는 군정의 급선무인 구민정책에 대한 방책을 건의한 것이다. 「답이성옥(答李性玉)」은 『논어』에 대한 질의에, 「답서자응(答徐子膺)」은 『가례』에 대한 질의에, 「답김우혁(答金宇爀)」은 『주역』에 대한 질의에 답한 글이다.
설의 「당곡강설(當谷講說)」은 당곡서당에서 강의한 내용을 수록한 것이다. 「경의집설(經義集說)」은 성리(性理)를 비롯해 인간의 재능·신념·문장 등을 논한 글이다. 「노석변(老釋辨)」은 도교와 불교가 유교와 다른 점을 지적한 글이다. 도교는 태어나기 전의 일을 안다고 하나 이는 만물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고, 불교는 마음이 영하다고 하나 이는 진망(眞妄)과 사정(邪正)을 모르는 소리라고 평하였다.
「시무만록(時務漫錄)」은 1777년(정조 1) 정조가 등극할 때 급히 시행해야 할 시무를 적은 것으로, 저자의 정치적인 견해를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역서(曆書)의 기본을 설명한 「기삼백주포산설(朞三百註布算說)」과 도량형기의 척도를 설명한 「괘율설(卦律說)」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