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3·1운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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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사건
1919년 3·1운동 때 경상남도 합천군 내 각처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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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19년 3·1운동 때 경상남도 합천군 내 각처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경과와 결과

서울에 있던 정현상(鄭鉉相)은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상백면으로 내려와 정현하(鄭鉉夏)에게 전달하였다. 한편, 이기복(李起馥)도 이원영(李愿永)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비밀리에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들은 정연표(鄭演彪)의 중개로 운동을 일원화해, 3월 18일 삼가(三嘉) 장날에 약 400명의 시위 군중으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시위 군중은 강제 해산되고, 주동자 10명이 붙잡혔다.

3월 19일의 합천읍 장날에는 500여 명의 군중이 만세 시위를 전개하다 심재기(沈載棋) 등 주동자 16명이 붙잡혔다. 3월 20일 다시 의거하여 시위행진을 벌였으나 일제의 무차별 사격으로 4명이 순국, 11명이 부상하였고, 붙잡혀서 형을 산 자가 22명이었다.

한편, 대병면에 사는 임상종(林尙鍾)은 서울에서 몰래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와 권영두(權寧斗)·권중박(權重璞)·정시권(鄭時權)·유인수(柳仁秀)·권양희(權良熙)·송헌기(宋憲基) 등과 협의, 창리(倉里) 장날에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3월 20일 4, 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벌이던 중, 출동한 일본 헌병이 총으로 맨앞에 있던 이병추(李秉樞)를 쏘았다. 이에 군중이 흥분하여 주재소와 대병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서류를 불태워 버렸다. 이날 일본군의 발포·제지로 54명이 검거되었다.

3월 21일초계리(草溪里) 장날에는 이원화(李源華)·전하신(全夏善)·성만영(成萬永)·김덕명(金德明) 등의 주동으로 4,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역시 출동한 일본 경찰에 의해 2명이 순국, 10명이 부상하였고, 많은 사람이 붙잡혔다.

쌍백면에서는 3월 22일에 4,000여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 시위행진을 벌였는데, 출동한 일본 헌병의 무차별 사격으로 공사겸(孔士謙)이 현장에서 즉고 많은 사람이 붙잡혔다. 묘산면에서는 3월 22·23일에 걸쳐 윤병석(尹炳奭)·윤병은(尹炳殷)·윤병양(尹炳陽) 등의 주동으로 100여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출동한 일본 경찰의 무차별 총격으로 2명이 죽고, 많은 사람이 부상 또는 검거되었다.

그 밖에 3월 23일 오후 3시경, 가회·쌍백·삼가면 등지에서 모인 1만 3,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삼가읍 정금당(正衿堂) 앞 광장에서 일제를 규탄하는 성토 대회를 열었다. 이날 연사로 나온 김전의(金典醫)·정방철(鄭邦哲)·김달희(金達熙)·임종봉(林鍾鳳) 등은 일제의 침략상을 규탄하고 민족 독립의 쟁취를 소리 높여 역설하였다.

마지막 연사 임종봉의 민족혼을 깨우치는 강연이 절정에 달하였을 때 일본 경찰이 총격을 시작하였다. 총을 맞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임종봉의 모습에 군중의 분노가 폭발하여, 몽둥이와 낫을 들고 경찰주재소와 우편소로 몰려갔다.

이 때 일본 군경이 일제히 총격을 가하여 13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여 명이 부상하였다. 그 밖에 3월 28일에는 야로면, 4월 3일에는 가야면 매안리, 4월 7일에는 봉산면 술곡리에서 각각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어 많은 주동자들이 붙잡혔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자료집』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독립운동사』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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