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21일 손원일, 정긍모를 중심으로 김영철, 한갑수, 민병증 등 5인이 해군건설의 초석이 될 ‘해사대’를 결성하였다. 이틀 뒤인 8월 23일 손원일 등은 서울 안국동의 안동교회에 해사대라는 간판을 걸고 해사대본부를 발족시켰다. 이후 해사대는 기반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구 교통국 해사와 산하단체였던 조선해사보국단과 연합하여 ‘조선해사협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미군정이 선포되고 한국 연안의 경계 필요성이 대두되자 조선해사협회는 군정당국과 협의 하에 해안경비를 담당할 조직을 만들게 되었으며, 그 명칭을 ‘해방병단’이라 명명하고 단장에 손원일 소령이 취임하였다.
해방병단이 어느 정도 체계를 잡게 되자 사관생도를 양성할 목적으로 1946년 1월 17일 ‘해군병학교’를 설립하고, 초대교장에 손원일 중령이 취임하는 한편, 2월 8일 사관생도 입교식을 거행하고 해사 1기생 총 113명이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1946년 6월 5일 해방병단이 ‘해안경비대’로 개칭되자, 해군병학교도 ‘조선해안경비대사관학교’로 개칭되고, 8월 10일 다시 ‘해안경비대학’으로 변경하였다가 8월 14일 ‘해사대학’으로 개칭되었다.
1948년 10월 25일 현재의 진해시 옥포만의 교정으로 교사를 이전하고, 1948년 11월 16일에는 교명을 해군대학교로 개칭하였으나, 1949년 1월 15일 최종적으로 해군사관학교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1950년 6월에는 북한의 남침으로 당시 사관생도였던 4, 5, 6, 7기생 전원이 창원지구 전투 및 해상전투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1953년 8월 19일 4년제 교과과정이 마련되었으며, 1955년 10월 1일을 기하여 사관학교설치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수업연한이 4년제인 일반대학 과정으로 간주되어, 졸업자에게는 학위를 수여할 수 있게 되었다. 4년제의 확립 및 제반 시설 확충과 함께 규칙적이고 제도화된 생도생활도 정립되어 나갔는바, 적성평가제도, 명예제도, 천자봉 구보, 군기장 제도, 무감독 시험제도, 옥포회 활동 등 해군사관학교의 독특한 전통이 정립되어 갔다.
교육 및 훈육면에서도 1972년 대통령의 군 과학화 지시에 따라 과학화 교육계획을 수립하여 이학사에 이어 공학사의 학위를 수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해양분야의 연구를 위하여 1988년 부설 해양연구소를 설립하여 해양 한국의 기틀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특히 1998년부터 여자사관생도 모집 결정과 함께 1999년 21명이 입교하였고, 2003년 제57기 임관식에서 이들 여자생도가 처음으로 장교로 임관하였다.
해군사관학교는 생도 4년간의 총 결산으로서 1954년 해사 9기생부터 최초의 해외순항훈련을 실시함으로써 사관생도들에게 항해술 및 각종 현장체험훈련을 통한 실무 적용능력과 지휘역량을 배양하고 해군장교로서의 자질을 축적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1992년에는 순항훈련으로 세계일주를 완수하였다.
해군사관학교는 태평양 시대의 주역이 될 대양해군을 양성하고 세계일류 사관학교로 발돋움하기 위해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여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