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3,304㎡. 100여 개소에 달하며, 출토된 청자는 조잡한 태토(胎土)에 녹청색·녹갈색의 유(釉)가 얇게 시유된 그릇들이다. 대접, 접시, 광구병(廣口甁), 대반(大盤), 편호(扁壺), 매병(梅甁), 주자(注子), 완(盌) 등의 기형(器形)으로 문양은 거의 없으며, 점토가 섞인 내화토(耐火土) 받침으로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평저(平底)접시가 적지 않게 출토되었고, 굽다리가 좁고 낮은 소형의 변형 햇무리굽완 및 철화(鐵畵)·철채(鐵彩)·퇴화기법(堆花技法)이 나타나며, 경사진 둥근 도지미가 출토되는 점 등으로 보아 11세기 후반경 지방산(地方産)의 조질 청자(粗質靑磁) 가마터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84년에 발굴 조사된 30,672점의 완도 어두리 해저출토 도자기들을 제작하였던 곳으로 밝혀져 주목되는 곳이며, 1965년에 발굴 조사된 인천 경서동 녹청자 요지(사적, 1970년 지정) 출토의 녹청자(綠靑磁)와 같은 조질 청자로 밝혀졌다.
이 가마터에서 출토된 조질 청자는 녹청자의 제작시기·용도 등을 알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된다. 즉 녹청자는 조질 청자의 하나로 지방의 관청·사찰·토호세력의 요청에 따라 제작된 것으로서, 11세기 후반부터 14세기까지 계속 제작되었던 생활용 청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