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인해(石仁海)가 지은 단편소설. 1941년 2월 ≪문장≫(3권 2호)에 발표하였다.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전설적 요소가 가미된 1인칭 시점의 심리소설이다. 배경은 어느 해 8월의 나비섬〔蝶島〕으로, 주인공은 ‘나(해필)’와 ‘황 노인’ 그리고 ‘매네(梅女)’ 등이 등장하며, 개 ‘누렁이’도 사건 전개의 주요 흐름을 담당한다. ‘
나’는 1년 만에 다시 나비섬을 찾으며 작년의 기억 때문에 다소 흥분된다. “나비섬! 매네는 미상불 있으려니.” 그러나 황 노인만이 초라한 몰골로 지내고 있었고, ‘나’는 지난 기억을 되새긴다. 황 노인, 즉 황 의원(黃醫員)은 ‘나’의 할아버지와 각별한 사이였는데, 의술이 고명할 뿐더러 누구에게나 지성이었기에 시세를 만난 듯하였다.
그러나 새로 법령이 생기고 전문의사들이 나오면서 황 노인의 존재도 힘이 없어져 갔다. 한동안 통 소식이 없었는데 풍문에 들으니, 황 노인은 진작 죽게 마련이 된 처녀 하나를 살려주었고, 그 처녀는 목숨의 은인인 황 노인에게 생을 바쳐 지아비로 섬기기로 약속을 하였으며, 둘은 세상시비를 떨쳐버리고 나비섬에 오붓한 살림을 차렸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더듬어 찾아 ‘나’가 나비섬에 온 것이 작년 여름이었던 것이다. 벌써 매네는 섬의 생활에 권태를 느끼면서 남편의 추한 면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그 집 개마저도 뭍을 그리며 유난히 짖어대고는 하였다. ‘나’는 황 노인에게 매네를 뭍으로 보내어 본집에 다녀오게 하라고 졸라보기도 했었다. 1년 만에 찾아온 나를 황 노인은 의심하는 듯하였다.
매네가 도망가버려 황 노인은 고달픈 마음을 누일 수가 없었고, 뭍을 보며 흥분하여 짖어대는 누렁이를 향하여 지팡이를 휘둘러대면서 탈출한 아낙에게 앙갚음하지 못한 분을 푸는 듯하였다. 참다 못한 ‘나’는 누렁이를 데리고 몰래 섬을 빠져나가기로 하였다. 배가 얼마를 나왔을 무렵, 어디선가 황 노인이 고함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계집년을 빼내가더니 아직도 부족해서…….” 옥신각신하던 중 배는 암초에 걸렸다. ‘나’는 죽음에 직면한 순간의 절망과 공포에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뱃전에 쓰러졌다. 황 노인은 나를 구해냈다. “노인장, 차라리 이 길루 내집으로 가기루 헙시다.” 그러나 노인은 시뿌연 산송장으로 앉아 있기만 하였다. 나비섬은 황 노인의 슬픈 전설을 지닌 채 잿빛 같은 해수(海愁)에 잠긴다.
소박하고 겸허한 생을 영위하는 주인공들을 통하여 관조적인 인생태도를 담담하게 그려나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1인칭 시점이나 일기체의 특성을 충분히 이용하여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밀도있게 추적하여 나갔다. 특히, 한국어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면서 한국적 정취를 여실히 드러낸 조사(措辭)와 묘사가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