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학파란 실상 그 범위가 상당히 애매하다. 1926년 가을 일본 동경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외국문학연구회의 회원들과 1927년 1월 서울(京城)에서 창간된 『해외문학(海外文學)』지의 집필진들을 일단 그 대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외국문학연구회는 주로 일본 호세이대학(法政大學)에 재학 중인 외국 문학 전공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회원으로는 이하윤(異河潤)·김진섭(金晉燮)·홍재범(洪在範)·손우성(孫宇聲)·이선근(李瑄根)·정인섭(鄭寅燮)·김명엽(金明燁)·김온(金鎾) 등이었다. 여기에 『해외문학』지를 통하여 함일돈(咸逸敦)·정규창(丁奎昶)·김한용(金翰容)·이병호(李炳虎)·장기제(張起悌)·유석동(柳錫東) 등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해외문학파’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문예월간(文藝月刊)』지 및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와 관련된 이헌구(李軒求)·함대훈(咸大勳)·김광섭(金珖燮)·서항석(徐恒錫)·박용철(朴龍喆)·최정우(崔珽宇)·김상용(金尙鎔)·이형우(李亨雨)·이홍종(李弘鍾)·허보(許保)·김삼규(金三奎)·조희순(曺希淳)·유치진(柳致眞) 등이 가세하여 뚜렷한 문단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하윤과 더불어 그 핵심 구성원이었다고 볼 수 있는 정인섭의 회고에 의하면, 해외문학파의 활동은 동경시대와 경성시대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동경시대가 동호인적 친목이나 외국 문학의 번역 소개 같은 비교적 소극적 활동기였다면, 1929년 이들이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시작된 경성시대는 이들에 의하여 각 신문사의 편집인이나 학예면이 거의 지배되다시피 되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나의 문단 세력권을 형성하면서 프로문학 등 기성 문인들과 날카롭게 대립하게 되었는데, 이 대립은 이데올로기나 번역 문제를 중심으로 한 여러 차례의 논전(論戰)으로 나타난다.
해외문학파의 공적은 외국 문학의 본격적인 번역·소개라는 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수필이나 희곡 같은 미개척 분야에 대한 이들의 선구적 업적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