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이 사행은 관례에 따라 새로운 관백(關白)의 습직(襲職)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술관의 임무는 주로 사행 일행의 글에 관한 직무를 맡았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 사행들을 학사대인(學士大人)이라 부르면서 시문을 청하는 한편 학문토론을 청하였으므로, 이들을 맞이하여 문화선양을 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임무였다.
1719년(숙종 45) 4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10개월간의 일기를 3권으로 나누어 썼으며, 끝에 「문견잡록(聞見雜錄)」이 수록되었다. 상권에는 사명을 받은 날로부터 일본 우시마도(牛窓)에 이르기까지의 6개월간으로, 그 내용은 의식적 행사와 영물(詠物)에 관한 시문으로 되어 있는데, 지리·인습·풍속·제도뿐 아니라 초목에 관하여도 기술하였다.
중권은 일본에 체류중 주로 승려들과 필담한 내용과 문집에 서문을 써준 것이다. 필담의 내용은 조선에 관한 여러가지 질문에 화답한 것으로, 이들은 조선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음을 보여준다.
하권은 귀국하여 복명할 때까지의 기록이며, 「문견잡록」은 일본에서 듣고 본 것을 기록한 것으로, 풍속에 관한 것이 많고 몇 사람의 인물평과 일본의 주자학(朱子學)을 서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