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 아버지는 행부호군 허수(許修)이며, 어머니는 응교 채경선(蔡慶先)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학업에 힘써 문명(文名)이 있었으며, 용력이 뛰어났다.
1633년(인조 11) 무과에 급제, 다음해 선전관 겸 비변랑(宣傳官兼備邊郎)이 되고, 1636년 서쪽 변방의 적침을 염려하여 무관을 뽑아 서부 각 주·현에 배치할 때, 순안현감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다음해 좌영장(左營將)으로 평양감사 홍명구(洪命耉)를 따라 김화(金化)에 이르러 적을 만났는데, 뒷고개에 진을 치고 싸울 것을 극력 청하였지만, 홍명구가 듣지 않고 들에 진을 치자 마지 못하여 보병을 거느리고 역공격을 하여 적을 두 차례나 격파했다.
다음날 아침 적이 뒷고개를 넘어와 기습함으로써 홍명구와 함께 전사하였다. 1649년 전공으로 좌승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