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허성묵(許聖默). 황해도 장연 출신.
1919년 이창실(李昌實)과 함께 구월산에 입산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면서 『독립신문』을 배포, 항일의식을 고취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1년간 복역하였다.
1922년 출옥 후 부일배 숙청공작을 전개하다가 다시 붙잡혔다. 1924년 간도로 망명하여 동계중학(冬季中學)을 설립하고 교장이 되어 청년들에게 항일의식과 애국심을 고취하였다.
1925년 신민부(新民府) 조직에 참여하여 교육부 위원장 및 선전부장을 역임하고, 신민부 기관지인 『신민보(新民報)』를 발간하다가 붙잡혀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순국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