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양천(陽川). 아버지는 허숭도(許崇道)이며, 이시애(李施愛)의 처조카이다. 길주 출신.
1467년(세조 13) 5월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키자 사옹별좌(司饔別坐)로 있다가 자원하여 훈융절제사(訓戎節制使) 염목(廉睦)의 군관으로 함길도병마절도사 허종(許悰)의 휘하에 속하여 출정하였다.
이 때 그의 아버지 허숭도가 이시애 밑에서 길주권임(吉州權任)으로 있었는데, 이를 설득하라는 허종의 명을 받고 단신으로 길주로 잠입하였다. 한때 정탐꾼으로 몰려 죽을 뻔하였으나 계교로 이시애를 속여 위기를 면하였다.
아버지를 만나 대의(大義)로써 역(逆)과 순(順)을 설명하여 동의를 얻은 뒤 적장 이주(李珠)·이운로(李雲露)·황생(黃生) 등의 적극적인 지원을 얻어 경성 운위원(雲委院)에서 이시애 일당을 체포하여 난을 평정하는 데 결정적 공로를 세웠다.
이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녹훈되고, 길성군(吉城君)에 봉하여졌으며, 행중추부첨사(行中樞府僉事)에 임명되었으나 길주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1471년(성종 2) 정월 상경하였으나 이시애의 여당(與黨)을 숨겨주었다는 혐의를 입고 이듬해 3월 고신(告身: 관직 임명사령장)이 몰수되고 공신적(功臣籍)에서 삭제되는 동시에 수원으로 안치되었다.
1474년 4월, 귀양에서 풀려나고 다음해 2월 고신을 돌려받았으며, 1476년 5월 처의 상언(上言)으로 공신전·별사전 등도 돌려받았다. 공조판서에 추증되고 길주의 향사(鄕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효장(孝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