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판. 66면. 작자의 제2시집으로, 1939년 남만서방(南蠻書房)에서 간행하였다. 서문이나 발문은 없고 <헌사>·<할렐루야>·<불길한 노래>·<나폴리의 부랑자>·<나의 노래>·<심동 深冬>·<상렬 喪列>·<황무지> 등 17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1937년 첫 시집 ≪성벽 城壁≫을 간행한 뒤 2년 만에 다시 나온 ≪헌사≫에서 그의 시세계는 첫 시집보다는 상당히 세련된 면모를 보여준다.
≪성벽≫에서의 어수선하던 형태도 많이 다듬어지고 시에서 절제와 함축의 효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각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첫 시집 ≪성벽≫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것이 이 ≪헌사≫의 시세계이다. 영탄의 흐느낌은 많이 거세되었지만, 퇴폐의 우울한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생명파의 시인들이 이성으로는 억제할 수 없는 원초적 감정을 노래하는 것을 본질로 삼고 있듯이, 생명파의 일원인 오장환의 시세계도 미의식이나 세련된 기법보다는 투박한 육성의 울림 그 자체에 충실하려는 경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시라고 하는 것을 어떤 미적 규범에 따라 조작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본능적 직관의 자연발생적인 표출로 보는 경향이 짙다.
그러면서도 <불길한 노래>에서와 같은 처절한 자기고백, <나폴리의 부랑자>에서 나타나는 퇴폐와 동경의 분위기, <나의 노래>·<심동>·<상렬>에 보이는 죽음의 미화 등은 그가 1920년대의 감상적 낭만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시인부락 詩人部落≫의 동인으로서 오장환과 서정주(徐廷柱)의 시세계는 서로 비슷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장환의 경우는 좀더 본능적이고 정감적인 면이 우세하다는 특징을 추출해낼 수 있다. ‘불길한 사족수(四足獸)’(할렐루야), ‘철책 안 짐승’(헌사), ‘짐승들의 울음·야수들의 회상’(싸늘한 화단), ‘검은 먹구렁이’(불길한 노래), ‘수없는 도야지’(황무지) 등의 표현은, 인간의 수성(獸性)을 오히려 생명의 원초적 모습으로 파악하려는 그의 자세를 말해준다.
또 다른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생명이나 인생 자체를 너무도 주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야 寂夜>·<싸늘한 화단> 등의 작품에 나타나는 애상성(哀傷性)을 통해서 이 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또한, 그는 이 시집에서 <황무지>라는 장시 형태를 시도하고 있는데, 이 작품이 작자의 왕성한 의욕과는 달리 결국 실패하고 만 것은 그의 시가 가지는 구조적 취약점에 기인한다.
폐광(廢鑛)을 무대로 거기에 모인 돼지 같은 인간을 통하여 현실세계의 축도를 그려내려고 한 것이 작자의 의도였으나, 시의 바탕이 되어야 할 비유적 언어나 표현기법의 배려가 없이 무모하게 서사성(敍事性)을 도입한 결과 시가 산문적 넋두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따라서, ≪헌사≫로서 대표되는 오장환의 시세계는 시에서 노래하는 내용보다도 노래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