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신성불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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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개념
삼국시대 신라에서 현재의 사람 몸을 가진 채 부처를 이루거나 극락세계에 왕생한다고 여기는 불교교리. 정토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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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신라에서 현재의 사람 몸을 가진 채 부처를 이루거나 극락세계에 왕생한다고 여기는 불교교리. 정토사상.
내용

≪삼국유사≫에는 이와 관련된 몇 편의 설화가 전하는데, 모두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의 사실로 전해지고 있다. 시대적으로 볼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문무왕 때의 승려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이다.

광덕과 엄장은 서로 벗하여 아미타불의 정토(淨土)에 왕생하기를 간구하였다. 특히, 광덕은 분황사(芬皇寺) 서쪽에서 아내와 함께 살았으나 동침하지 않고, 평생을 단신정좌(端身正坐)하여 아미타불을 외운 결과, 하늘의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광명을 타고 극락정토로 왕생하였다.

이튿날 엄장은 광덕의 처와 장사를 지낸 다음, 광덕의 처와 함께 살면서 남녀관계를 맺으려 하자, 이때 광덕의 처가 남편의 수도 자세를 들려주었다. 광덕은 날마다 십육관법(十六觀法)을 행하며 아미타불을 염하였을 뿐 난잡한 행동이 없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엄장은 몹시 부끄러워하였다.

엄장은 원효(元曉)를 찾아가 쟁관법(錚觀法)을 배운 뒤 극락정토에 왕생하였다고 한다. 광덕과 엄장의 왕생은 신라의 미타신앙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이지만, 그 초기부터 광명을 타고 극락정토로 나아간 것으로 표현한 점은 주목된다.

성덕왕 때 백월산(白月山)에서 도를 닦았던 노힐부득(努肸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은 신라인의 현신성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어느 날 밤 백호(白毫)의 빛이 서쪽으로부터 오더니 빛 가운데서 금색 팔이 내려와 이마를 만지는 꿈을 꾸고 백월산 무등곡(無等谷)으로 들어가, 각각 미륵불과 아미타불을 염불하였다.

그 뒤 3년이 채 못 된 709년(성덕왕 8) 사월초파일 해질 무렵에, 달달박박에게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 하룻밤 자고 가기를 간청하였으나 거절하자, 여인은 다시 노힐부득을 찾아와 재워 줄 것을 청하였다. 노힐부득은 자비심으로 여인을 맞이하여 쉬게 하고 염불을 계속하였으며, 새벽녘에 여인의 산고(産苦)를 보살펴 준 뒤 더운 물로 목욕을 시켰다.

이때 통 속의 물은 향기를 강하게 풍기면서 금액(金液)으로 바뀌었다. 그는 여인의 청에 따라 금액의 물에 목욕을 했는데, 목욕을 하고 나자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고 살갗이 금빛으로 변하면서 미륵불로 변신하였다. 이 여인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 달달박박이 찾아왔을 때 노힐부득은 연화대(蓮華臺)에 앉은 채 미륵불이 되어 광명을 발하고 있었다. 그 까닭을 물으니 관세음보살이 화현한 여인을 만나 이렇게 되었다고 하고, 금빛 상으로 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에 달달박박도 아미타불이 되었으며, 두 사람은 소식을 듣고 찾아온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한 뒤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고 한다.

또한 경덕왕 때의 불교 신도 욱면(郁面)의 왕생도 신라 정토사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계집종이었던 욱면은 주인이 강주(康州)의 거사(居士) 수십 명과 함께 극락왕생을 염원하며 미타사(彌陀寺)를 창건하고 만일계회(萬日契會:일만일 동안 염불정진하는 모임)를 열었을 때 함께 참여하였다. 신분이 달라 법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염불하였는데, 주인은 그녀가 일하지 않음을 미워하여 곡식 두 섬을 주고 하루 저녁에 찧게 하였다.

그녀는 초저녁에 다 찧고 절에 와서 부지런히 염불하였다. 하루는 뜰 좌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고 노끈으로 꿰어 말뚝에 연결하여 합장하고 좌우로 흔들면서 지극히 정진하였다. 그때 공중에서, “욱면랑은 당에 들어가 염불하라.”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 소리를 들은 승려들이 그녀에게 권하여 법당에서 염불하게 하였다.

그 뒤 얼마 있지 않아 하늘의 음악이 서쪽에서 들려왔고, 그녀의 몸은 들보를 뚫고 서쪽으로 날아가다가 교외에서 육신을 버리고 부처의 몸으로 변하여 연화대에 앉아 대광명(大光明)을 발하면서 극락으로 갔으며, 공중에서 음악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욱면의 왕생은 죽어서가 아니라 현신으로 극락에 간다는 신라 정토신앙의 특징을 가장 극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밖에 건봉사(乾鳳寺)의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에서도 현신 왕생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758년(경덕왕 17) 발징화상(發徵和尙)은 정신(貞信)·양순(良順) 등과 함께 건봉사에서 만일염불회를 베풀었다.

여기에 신도 1,820명이 참여하였는데, 그 가운데 120명은 의복을 마련하고 1,700명은 음식을 마련하여 염불인들을 봉양하였다. 782년(선덕왕 3) 1만 일의 기도가 끝났을 때 31명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 한꺼번에 극락왕생하였고, 그 뒤에도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왕생하였다고 한다.

이상의 기록들을 통해 볼 때 신라의 현신성불사상은 다른 나라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일본의 경우 극락왕생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방법으로 왕생한 이가 다른 사람의 꿈에 나타나 왕생하였음을 알리고 있는 데 비하여, 신라의 극락왕생은 이 몸을 가진 채 그대로 왕생하거나 몸을 버리고 왕생하는 그 순간을 보여줌으로써 왕생을 입증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즉, 일본의 극락왕생방법에 비하여 한 단계 발전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노힐부득이나 달달박박과 같이 현신으로 미륵불과 아미타불로 바뀐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불교사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부처나 보살이 중생의 몸으로 화현하였다가 다시 부처나 보살의 몸을 나타내고 있는 데 반하여, 이 설화는 중생이 수행하고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어 바로 부처의 몸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특징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事蹟)』
『신라의 미타사상(彌陀思想)」(김영태, 『불교학보』 12,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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