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주1에서, 주2하는 데 필요한 3 아승기겁이라는 긴 시간을 거치지 않고 즉시 성불할 수 있다는 교리로서, 일체는 본성적으로 모두 진여(眞如)이므로 번뇌와 깨달음, 부처와 중생 사이에 차별이 없다는 것을 체득한다면 진리가 즉시 현현한다는 의미이다.
『법화경(法華經)』 권4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에서는 8살 용녀가 현신성불(現身成佛)하였다는 내용이 있고, 『인왕경(仁王經)』 「산화품(散華品)」에서도 10 항하사수(恒河沙數)의 보살들이 현신성불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현신성불은 밀교에서 주요한 위치를 가진다. 밀교는 부모에게서 받은 이 몸이 곧바로 부처라는 궁극의 결과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한다. 즉 부처와 중생은 무차별하다는 것을 잘 관찰하고 손으로 수계를 맺고 입으로 진언을 외며 마음은 삼매에 머물면, 대일여래(大日如來)와 상응하여 일체가 된다는 것이다. 즉 중생의 육신에 본래 갖추고 있는 법신(法身)을 증득하여 성불한다는 것이다.
화엄종에서도 현신성불이 논의되는데, 지엄(智儼, 주3이 지은 『화엄공목장(華嚴孔目章)』 권4에서는 속히 성불하는 다섯 가지 범주를 제시한다.
(1) 승신(勝身) : 전륜성왕의 자식이나 도솔천의 자식과 같은 경우 태어날 때의 신체가 뛰어나기 때문에 지금 이 몸으로 성불할 수 있다.
(2) 견문(見聞) : 뛰어난 가르침을 보고 들어 신심이 견고해지면 부처의 십력(十力)을 증득하여 깨달을 수 있다.
(3) 일시(一時) :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선지식이 계신 곳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한 순간에 보현법(普賢法)을 얻을 수 있다.
(4) 일념(一念) : 속제(俗諦)의 사유라도 보현법(普賢法)에 계합한다면, 이 일념에 의해 또한 성불할 수 있다.
(5) 무념(無念) : 일체가 모두 불생불멸함을 이해하면 진불(眞佛)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이 몸이 곧바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교리를 수용하여 수증론으로 구체화 시켰다.
통일 신라의 경우 이러한 현신성불이 정토 신앙과 결합하여 '이 몸 그대로 극락정토에 왕생한다'는 사유로 변화하였다. 때문에 현대 연구에서는 통일신라 시대의 현신성불을 밀교의 즉신성불과 구분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이와 관련된 몇 편의 설화가 전하는데, 모두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의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1) 문무왕[재위 661~681년] 때,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은 서로 벗하여 아미타불의 정토(淨土)에 왕생하기를 간구하였다. 특히, 광덕은 분황사(芬皇寺) 서쪽에서 아내와 함께 살았으나 동침하지 않고, 평생을 단신정좌(端身正坐)하여 아미타불을 외웠다. 어느날 해 그림자가 붉게 물들고 소나무 그늘에 어둠이 깔릴 때 쯤, 엄장의 집 창밖에서 소리가 났다. “나[광덕]는 이미 서쪽으로 가니[西往] 자네는 잘 살다가 빨리 나를 따라 오라”라고 알렸다. 엄장이 문을 밀치고 나와 그것을 살펴보니 구름 밖에 천악(天樂) 소리가 들리고 밝은 빛이 땅으로 이어져 있었다. 다음 날 그 집을 찾아가니 광덕은 과연 죽어 있었다. 이에 그 부인과 함께 시신을 거두고 무덤을 만들었다. 이튿날 엄장은 광덕의 처와 장사를 지낸 다음, 광덕의 처와 함께 살면서 남녀관계를 맺으려 하자, 이때 광덕의 처가 남편의 수도 자세를 들려주었다. 광덕은 날마다 십육관법(十六觀法)을 행하며 아미타불을 염하였을 뿐 난잡한 행동이 없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엄장은 몹시 부끄러워하였다. 엄장은 원효(元曉)를 찾아가 쟁관법(錚觀法)을 배운 뒤 극락정토에 왕생하였다.
(2) 성덕왕[재위 702~737년] 때 백월산(白月山)에서 도를 닦았던 노힐부득(努肸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은 어느 날 밤 백호(白毫)의 빛이 서쪽으로부터 오더니 빛 가운데서 금색 팔이 내려와 이마를 만지는 꿈을 꾸고 백월산 무등곡(無等谷)으로 들어가, 각각 미륵불과 아미타불을 염불하였다. 그 뒤 3년이 채 못 된 709년(성덕왕 8) 사월초파일 해질 무렵에, 달달박박에게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 하룻밤 자고 가기를 간청하였으나 거절하자, 여인은 다시 노힐부득을 찾아와 재워 줄 것을 청하였다. 노힐부득은 자비심으로 여인을 맞이하여 쉬게 하고 염불을 계속 하였으며, 새벽녘에 여인의 산고(産苦)를 보살펴 준 뒤 더운 물로 목욕을 시켰다. 이때 통 속의 물은 향기를 강하게 풍기면서 금액(金液)으로 바뀌었다. 그는 여인의 청에 따라 금액의 물에 목욕을 했는데, 목욕을 하고 나자 갑자기 정신이 상쾌해지고 살갗이 금빛으로 변하면서 미륵불로 변신하였다. 이 여인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 달달박박이 찾아왔을 때 노힐부득은 주4에 앉은 채 미륵불이 되어 광명을 발하고 있었다. 그 까닭을 물으니 관세음보살이 화현한 여인을 만나 이렇게 되었다고 하고, 금빛 상으로 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에 달달박박도 아미타불이 되었으며, 두 사람은 소식을 듣고 찾아온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한 뒤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고 한다.
(3) 경덕왕[재위 742~765년] 때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계집종이었던 욱면(郁面)은 주인이 강주(康州)의 거사(居士) 수십 명과 함께 극락왕생을 염원하며 미타사(彌陀寺)를 창건하고 만일계회[萬日契會:일만일 동안 염불정진하는 모임]를 열었을 때 함께 참여하였다. 신분이 달라 법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염불하였는데, 주인은 그녀가 일하지 않음을 미워하여 곡식 두 섬을 주고 하루 저녁에 찧게 하였다. 그녀는 초저녁에 다 찧고 절에 와서 부지런히 염불하였다. 하루는 뜰 좌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고 노끈으로 꿰어 말뚝에 연결하여 합장하고 좌우로 흔들면서 지극히 정진하였다. 그때 공중에서, “욱면랑은 당에 들어가 염불하라.”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 소리를 들은 승려들이 그녀에게 권하여 법당에서 염불하게 하였다. 그 뒤 얼마 있지 않아 하늘의 음악이 서쪽에서 들려왔고, 그녀의 몸은 주5를 뚫고 서쪽으로 날아가다가 교외에서 육신을 버리고 부처의 몸으로 변하여 연화대에 앉아 대광명(大光明)을 발하면서 극락으로 갔으며, 공중에서 음악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시대순으로 보았을 때, 가장 이른 시기의 기사인 광덕과 엄장의 설화는 수행을 통해 육신을 버리고 왕생했다는 전형적인 정토신앙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설화는 각자 미륵불과 아미타불이 되었다는 내용을 설하고 있으며, 욱면의 설화는 부처가 된 다음 극락으로 갔다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다. 이와 같이 통일신라 시대의 현신성불 사상은 정토사상과 결합되면서 고유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