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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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의 문신·학자, 최유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75년에 간행한 시문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노홍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현암유고 미디어 정보

현암유고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때의 문신·학자, 최유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75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675년(숙종 1) 최유연의 생질인 충청도관찰사 맹주서(孟胄瑞)가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맹주서의 발문이 있다. 이 발문에는 저자의 저술이 상당히 많으나 그 가운데에서 시문(詩文) 약간만을 추려 간행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지적 사항

4권 1책. 목판본. 장서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내용

권1·2에 시 222수, 권3에 시 22수, 부(賦) 3편, 권4에 논(論) 2편, 설(說) 1편, 기(記) 7편, 명(銘) 1편, 전(傳) 1편, 별집(別集)에 시 6수, 서(序) 2편, 부(賦)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대개 만년에 진주 악양(岳陽)에 퇴거한 후 소요자적(逍遙自適)을 읊조린 것으로, 옛 벗과 친지들을 생각해 지어준 시들도 간간이 보인다. 오언고시로는 양원(楊元)·양호(楊鎬)·송상현(宋象賢)·김여물(金汝岉)·고경명(高敬命)·조헌(趙憲)·이순신(李舜臣)·권필(權韠) 등의 「팔애시(八哀詩)」를 지어 그들의 절조(節操)·용쟁(勇爭)·공덕(功德)들을 높이 찬양하면서 애석해 하였다. 칠언고시 중 「만월대(滿月臺)」는 회고시(懷古詩)로서, 당시 흥성했던 고려의 왕궁 터가 황폐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그 처절함을 읊었다.

「별빈부(別貧賦)」에서는 스스로의 빈궁함을 노래하고 은근히 자기의 문장력을 자랑하였다. 이 글에서는 옛 양웅(揚雄)의 「축빈부(逐貧賦)」와 한유(韓愈)의 「송궁문(送窮文)」은 문(文)으로써 희롱한 것이라고 하면서, 만약 양자운과 한유가 빈천함을 괴롭게 여겨서 「축빈부」와 「송궁문」을 지었다고 여긴다면 그들을 아는 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공자(孔子)가 벼슬과 녹을 구하지 않고 도덕을 구했다는 말을 들어, 자기는 양자운과 한유와는 달리 직접 가난을 체험하면서 학문을 즐긴다고 하면서, 고관에서 물러난 자로서 자기의 청렴결백함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였다.

「응지구언진치안경제서천인상감설소(應旨求言進治安經濟書天人相感說疏)」는 왕의 명을 받아 「치안경제서」 27조항과 「천인상감설」 1편을 올리면서 쓴 것이다. 국정 운영에 대한 우국충정이 어린 직언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두 글이 이 책에 실려 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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