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난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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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조선 광해군 때 김직재(金直哉)의 옥을 다스리는 데 공이 있던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차문섭 (단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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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광해군 때 김직재(金直哉)의 옥을 다스리는 데 공이 있던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내용

1612년(광해군 4) 2월 봉산군수 신율(申慄) 등이 당시 황해도에 있던 김직재·백함(百緘) 부자가 역모를 주동하였다고 무고함에 따라 김직재의 옥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옥사는 결국 당시 권신(權臣)이던 이이첨(李爾瞻) 등에 의해 왕손인 진릉군(晉陵君)을 비롯한 소북파(小北派)의 잔당을 뿌리뽑기 위한 무옥(誣獄)으로 연결되었다. 이 옥사에는 많은 반대도 있었으나 끝내 허구로 얽어 성취되었으며, 이 옥사에 참여한 신율·이이첨·이산해(李山海) 등에게 형난공신의 훈호를 내리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무려 170명이 책록되었으나, 뒤에 1등 2명, 2등 12명, 3등 10명으로 모두 24명이 녹훈되었는데, 수공자로는 신율만 기록되었을 뿐 명단을 밝히지 않았다. 형난공신은 광해군 때 책록된 위성공신(衛聖功臣)·익사공신(翼社功臣)·정운공신(定運功臣)과 더불어 1623년 인조반정으로 대북파(大北派)가 몰락하면서 공신호가 삭탈되었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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