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3년(세종 15) 김종서(金宗瑞)가 지은 시조. 모두 2수. 함길도 관찰사로 육진(六鎭)을 개척할 때 지은 작품이다. ≪청구영언≫·≪해동가요≫·≪병와가곡집 甁窩歌曲集≫ 등 여러 가집에 두루 전한다.
“삭풍(朔風)은 나무 긋ᄐᆡ 불고 명월(明月)은 눈 속에 ᄎᆞᆫ듸/만리변성(萬里邊城)에 일장검(一長劍) 집고 셔셔/긴 ᄑᆞᄅᆞᆷ 큰 ᄒᆞᆫ 소ᄅᆡ에 거칠거시 업세라.”, “장백산(長白山)에 기(旗)를 ᄭᅩᆺ고 두만강(豆滿江)에 ᄆᆞᆯ을 씻겨/셕은 져 션ᄇᆡ야 우리 아니 ᄉᆞ나희냐/엇더타 능연각상(凌烟閣上) 뉘 얼골을 그릴고.” 지용(智勇)을 겸비하였던 작자의 호기로운 기상을 잘 나타냈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호기가’라고 불렀다.
특히 두번째 작품은, 작자가 여진을 칠 때 비겁한 반대파들 때문에 만주회복의 대망을 이루지 못한 울분을 노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