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송일현의 증손 송재근(宋在根)·송근옥(宋釿鈺)·송흥진(宋興鎭)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기우만(奇宇萬)의 서문, 권말에 송흥진의 발문이 있다.
3권 1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전주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80수, 권2에 소(疏) 1편, 서(書) 4편, 서(序) 2편, 기(記) 4편, 발(跋) 4편, 잡저 8편, 권3에 부록으로 서(序) 5편, 천문(薦文) 2편, 서(書) 3편, 운(韻) 12편, 행장·묘갈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대개 마음을 주제로 한 성정시(性情詩)로, 「심(心)」·「성(性)」·「용심(用心)」·「지신(持身)」·「분사난(忿思難)」 등이 대표작이다.
소의 「청이문정공부조소(請李文貞公不祧疏)」는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론에 반대하다 귀양간 이신의(李愼儀)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일이 있음을 들어 그를 부조(不祧: 나라에 큰 공훈을 세운 사람의 신주를 영구히 사당에 모심.)해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이다.
잡저의 「논심편(論心篇)」은 마음을 함양하는 공부에 대해 경계하는 내용이다. 예악과 교화는 마음의 발(發)이며, 전장(典章)과 문물(文物)은 마음의 저(著)이고, 제가치국평천하(齊家治國平天下)는 마음의 추(推)이니, 성명(性命)이 바른 도심(道心)에로 복귀해야 함을 논하였다. 「도선해(徒善解)」는 자신의 처신에 관한 견해를 객과의 문답 형식으로 변론한 것이다. 도선(徒善)이란 선한 마음만 가졌을 뿐 정치를 꾸려나가는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위정자를 비평할 때 쓸 수 있는 말이기에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향리의 도선자(徒善者)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숭정통보설(崇禎通寶說)」은 임진왜란 후 연호를 만력(萬曆)으로부터 숭정(崇禎)으로 고쳐 사용하는 데 대해 그 부당함을 논변한 내용이다. 「오성회사실(五姓會事實)」은 1870년(고종 7)에 조직된 송씨(宋氏)·나씨(羅氏)·유씨(柳氏)·김씨(金氏)·이씨(李氏) 등 5성의 모임에 대해 적은 것이다. 송씨와 그 외척들이 선조의 유업을 받들고 친목과 예학을 위해 조직했음을 밝혔는데, 향촌 사회 계모임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