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승려 호은 유기(好隱有璣, 1707~1785)의 시문집으로서 4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58수와 문 43편이 수록되어 있다. 호은이 주석하였던 달성 비슬산(琵瑟山)과 합천 가야산(伽倻山) 인근에 있는 여러 사찰과 암자의 중수기·상량문·사적기 등이 다수 실려 있다.
김몽화(金夢華)의 발문에 의하면, 호은의 제자인 정학(定學) 등이 경상도 합천 해인사(海印寺)에서 1785년에 간행하였다고 한다.
4권 1책. 목판본. 『한국불교전서』 제9책에 수록되어 있다.
호은 유기는 청주 출신이며, 별호(別號)가 해봉(海峯)이다. 16세에 무하 묘경(無瑕妙瓊)에게 계를 받았고, 28세에 낙암 의눌(洛巖義訥, 1666∼1737)을 사사하여 법맥을 이었다. 1771년(영조 47)에는 표충사수호총섭(表忠祠守護摠攝)을 임명받아 사명당(四溟堂)의 사당을 관리하였다.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말년에는 정토신앙에 귀의하였다고 한다.
『호은집(好隱集)』은 『해봉집(海峯集)』으로도 불린다. 권두에는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 쓴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김몽화(金夢華, 1723∼1792)가 쓴 발문이 붙어 있다. 채제공과 김몽화는 모두 조선 후기의 관리이자 대문장가들로서, 호은의 교우관계를 알 수 있다.
시 작품 중에는 「소옥행(小屋行)」·「야용가(夜舂歌)」 등이 있는데, 이들은 임제종 선사들이 수도하는 내력과 즐거움을 노래하는 수도시(修道詩)의 전통을 잇고 있다. 장두체(藏頭體)·회문체(回文體)·양관곡(陽關曲)·잡언체(雜言體) 등 다양한 양식을 활용하여 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본서에는 기(記) 13편·제문(祭文) 13편·사적비(事蹟碑) 1편·상량문(上樑文) 10편·양간록(樑間錄) 3편·권선문(勸善文) 2편 등 총 58편의 산문을 싣고 있다. 「현풍비슬산유가사기(玄風毘瑟山瑜伽寺記)」·「해인사대종기(海印寺大鍾記)」·「해인사복고사적비(海印寺復古事蹟碑)」·「해인사봉황문상량문(海印寺鳳凰門上梁文)」·「가야산중봉암기(伽耶山中峯菴記)」 등이 대표적이다. 또 3편의 양간록(樑間錄)이 실려 있는데, 「용천사명부전양간록(湧泉寺冥府殿樑間錄)」·「유가사대웅전양간록(瑜伽寺大雄殿樑間錄)」·「지장사승당양간록(地藏寺僧堂樑間錄)」이 있다. 양간록은 상량문의 다른 이름으로, 여기에 나오는 상량문의 양식적 연원에 대한 인식은 다른 불가문집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견해로서 주목된다.
1769년 안동 봉정사에서 간행한 판본은 『기신론소필삭기(起信論疏筆削記)』(20권 4책)로 함월 해월이 서문을 썼다(重刊起信論筆削記序…乾隆十八年癸酉(1753)仲夏涵月海源序). 『호은집』에 실린 「중각기신론소기서」에 의하면, 유기가 가야산(해인사)에 머물 때 안동 봉정사 납자 승일(昇一)이 찾아와서 청허의 문손인 지한(旨閑)과 관성(觀性)이 당본(중국본) 『기신론소기』 4권을 구했는데, 지한은 시주를 관성은 교정을 맡기로 했기에 호은 유기에게 서문을 부탁해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간행에서는 함월 해원(1691~1770)의 서문이 실린 것으로 추정된다. 본편을 통해서 호은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나 화엄사상에 조예가 깊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본서는 조선 후기의 다른 불가문집과 달리 비교적 많은 산문이 실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호은 유기가 주석하였던 달성 비슬산과 합천 가야산 부근에 있었던 사찰 및 암자들에 대한 기록을 통해, 이 지역 사찰의 역사와 중창불사 과정, 이에 관련된 인물들의 정보 등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