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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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유적
조선시대에 죽은 임금이나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여 두는 가운데 국장의 전 과정을 주관하여 처리하던 장소. 신위보관소.
이칭
이칭
혼궁(魂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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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에 죽은 임금이나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여 두는 가운데 국장의 전 과정을 주관하여 처리하던 장소. 신위보관소.
내용

혼궁(魂宮)이라고도 한다. 왕이 죽으면 3년상이 끝날 때까지만 혼전에 모시지만, 왕비가 죽으면 왕이 죽어 종묘에 입향한 뒤 왕을 따라 배향될 때까지 혼전에 모셨다.

일반 가정에서는 빈청(殯廳) 안에 혼백을 모시지만 왕실에서는 빈청과 혼전이 각각 따로 있었다. 혼전은 혼전도감(魂殿都監)이라는 특별 기구를 설치해 관리하게 하였다. 총책임자는 총호사(摠護使)였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현임 영의정이 겸임하도록 되어 있었고, 그 밑에 제조 · 도청(都廳) · 낭청(郎廳) 등이 있었다.

인원은 한정된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 늘리거나 줄일 수 있었다. 이들은 주로 혼궁을 상대로 내린 왕의 교지, 각 부처 간의 공문 조회, 의식 절차의 협의, 경비의 수지, 물품의 수출, 상벌, 의궤 등을 처리하였다.

혼전에서 거행되는 제례로는 대제(大祭) · 사시제(四時祭) · 납향(臘享) 등 친향제와 삭망제(朔望祭), 조석상식 · 진향 · 친제 등이 있었다. 혼전에서는 비록 왕이라 하더라도 소찬(素饌)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1417년(태종 17)에 만들어진 혼전 진상의 규정에 따라, 혼전의 진상은 전사시(典祀寺)에서 담당하였다.

혼전은 3방(房)으로 구성되었다. 1방은 제전 · 빈궁가칠(殯宮加漆) · 명정 · 계빈(啓殯) 등의 일을 처리하고, 2방은 조성(造成) · 수리 · 별공작(別工作)의 일을 처리하며, 3방은 제기 등을 주선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혼전에 항상 비치되어 있는 기구로는 당가(唐家) · 좌탑(座榻) · 신탑(身榻) · 신좌교의(神座交倚) · 봉선(鳳扇) · 작선(雀扇) · 홍개(紅蓋) · 청개(靑蓋) · 청자준(靑磁尊) · 아가상(我架床) 등이 있었다. 상주관으로는 참봉 2인과 충의(忠義) 4인이 있었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혼전도감의궤(魂殿都監儀軌)』
『춘궁통고(春官通考)』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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