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4년(선조 27) 훈원봉사(訓院奉事)로 있을 때 왜적이 고령현 풍곡리에 침입하였다가 패주하자 돌진하여 적의 목을 많이 베는 전공을 세웠다. 이후 1612년(광해군 4) 곤양군수를 지냈고, 2년 후에는 김해부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김해부사로 있을 당시에 본처에게서 낳은 아들을 박대하여 중이 되자 부자간의 윤기(倫紀: 윤괴와 기강)를 무너뜨렸다는 죄목으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아 사판(仕版: 벼슬아치의 명단)에서 삭제되었다. 그 뒤 1617년 다시 가내승(假內乘)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