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진천 출신. 참판 홍승헌(洪承憲)의 아들이다.
1910년 일본이 국권을 침탈하자 분개하여 집안이 모두 봉천성 환인현(奉天省桓仁縣)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19년 3·1운동 때 그곳의 광한단(光韓團)에 가입하였다.
1921년 1월 밀명을 띠고 이병욱(李丙旭)과 함께 권총 15정과 폭탄을 휴대하고 국내로 잠입하였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4월 26일 신의주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24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김동삼(金東三)의 밀명을 받고 국내로 파견된 김장식(金章植)·이병욱을 접촉, 서울에 대한통의부 지부를 설치하여 이탁(李鐸)을 지부장으로 추대하고 군자금 모금, 일제요인 암살, 식민통치기관 파괴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5년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5년으로 감형되었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