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도원(道源), 호는 규암(奎庵). 홍익생(洪益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귀연(洪貴演)이고, 아버지는 좌찬성 홍숙(洪淑)이며, 어머니는 안극치(安克治)의 딸이다.
1521년(중종 1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이어서 홍문관정자가 되었다가 저작·박사 등을 역임하고, 1523년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한 뒤에 이듬해 정언이 되었다.
1527년 세가시강원문학으로 재직 중 작서(灼鼠)의 변(變)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어 문학·검상을 거쳐 장령이 되었고, 1533년 당성위(唐城尉)의 옥사에 관련되었다는 무고를 받고 전남 화순에 유배되었다가 1537년 김안로(金安老)가 사사(賜死)되자 풀려났다.
1542년 응교가 되고, 동부승지를 거쳐 이듬해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며, 1545년(명종 즉위년) 명종이 즉위하자 판결사를 지낸 뒤 공조참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