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공서(公敍), 호는 손우(遜愚) 또는 만오(晩悟).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홍경소(洪敬昭)이며,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로 도사 한완(韓浣)의 딸이다.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이다.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이 굴욕적인 화의로 끝을 맺자 벼슬을 단념하고 태백산 춘양(春陽)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았다. 강흡(姜洽)·정양(鄭瀁)·홍우정(洪宇定)·심장세(沈長世) 등과 함께 ‘태백산오현(太白山五賢)’으로 불렸다.
김수항(金壽恒)·송시열(宋時烈)의 추천으로 참봉이 되어 세자익위사사어(世子翊衛司司禦)를 지냈으며, 죽은 뒤에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저서로는 『상제요록(喪祭要錄)』·『예기유회(禮記類會)』·『손우문집(遜愚文集)』 8권이 있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