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공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전라도관찰사, 우승지, 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봉계(鳳溪)
  • 중안(仲安)
인물/전통 인물
  • 본관남양(南陽 : 지금의 경기도 화성)
  • 사망 연도1598년(선조 3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전라도관찰사|우승지|참찬
  • 출생 연도1541년(중종 3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봉계일고 미디어 정보

봉계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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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전라도관찰사, 우승지, 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안(仲安), 호는 봉계(鳳溪). 홍계복(洪繼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준경(洪俊卿)이고, 아버지는 군수 홍보(洪俌)이며, 어머니는 유곡(柳轂)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7년(명종 22) 생원이 되고,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1588년 평안도구황경차관(平安道救荒敬差官)이 되어 영유현감(永柔縣監) 임태(任兌)를 처벌하는 등 민심을 수습하는 데 공을 세워 왕의 신임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안도 조도사(調度使)가 되어 명군(明軍)의 군수조달의 책임을 지고 전진(戰陣)의 상황을 왕에게 수시로 보고하였다.

곧 참의로 승진되어 조도사를 겸하고, 이어 함경도도순찰사가 되어 영흥의 적정을 보고하여 군의 계책을 진언하고, 각 지방에 남은 식량과 들판에 널려 있는 곡물을 거두어들이는 데 전력하였다. 1594년 전라도관찰사로 전주부윤을 겸하여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의 양곡을 조도(調度)하였다.

1596년 좌부승지를 거쳐 우승지·참찬 등을 역임하고, 정유재란이 일어날 징후가 보이자 다시 평안도 조도사가 되어 군량조달에 힘쓰던 중 숙환이 재발되어 군중에서 죽었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당성부원군(唐城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저서로 『봉계일고』가 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봉계일고(鳳溪逸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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