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안(仲安), 호는 봉계(鳳溪). 홍계복(洪繼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준경(洪俊卿)이고, 아버지는 군수 홍보(洪俌)이며, 어머니는 유곡(柳轂)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 생원이 되고, 1573년(선조 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1588년 평안도구황경차관(平安道救荒敬差官)이 되어 영유현감(永柔縣監) 임태(任兌)를 처벌하는 등 민심을 수습하는 데 공을 세워 왕의 신임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안도 조도사(調度使)가 되어 명군(明軍)의 군수조달의 책임을 지고 전진(戰陣)의 상황을 왕에게 수시로 보고하였다.
곧 참의로 승진되어 조도사를 겸하고, 이어 함경도도순찰사가 되어 영흥의 적정을 보고하여 군의 계책을 진언하고, 각 지방에 남은 식량과 들판에 널려 있는 곡물을 거두어들이는 데 전력하였다. 1594년 전라도관찰사로 전주부윤을 겸하여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의 양곡을 조도(調度)하였다.
1596년 좌부승지를 거쳐 우승지·참찬 등을 역임하고, 정유재란이 일어날 징후가 보이자 다시 평안도 조도사가 되어 군량조달에 힘쓰던 중 숙환이 재발되어 군중에서 죽었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당성부원군(唐城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저서로 『봉계일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