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우당(愚堂).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 출신.
1919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재학 중 3·1 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이상재(李商在) 지도 아래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1921년에 일본경찰에 붙잡혀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출옥 후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신채호(申采浩)와 함께 활동하였다. 1928년 만주로 건너가 신민부(新民府)에 가입하여 민정부(民政部) 중앙집행위원으로 국내외에서 항일운동을 하였다.
1929년 3월 신의주에서 일본경찰에 붙잡혀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복역 중 순국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