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온암(溫菴). 평안북도 철산 출신. 1909년철산의 영동교회(嶺洞敎會) 장로로 장립되었으며 1911년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912년 9월 경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대구제일교회의 전신인 남성정교회(南城町敎會)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같은해에 열린 장로회총회에서 첫 사업으로 중국 산둥(山東)선교사업을 결의함에 따라 방효원(方孝元)목사와 함께 1917년 산둥선교사로 임명되었다.
1918년에는 박상순(朴尙純)목사가 합류하여 중단되었던 선교사업이 활성화되었다. 1921년 난징(南京)에서 열린 중국장로교회총회에 참석, 산둥선교의 현황을 보고하고, 1922년 선교지역 분할 때 지모지방(卽墨地方)을 담당하여 선교회 회장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1925년 재정적인 이유로 산둥선교가 축소되면서 귀국하였다. 그 뒤 평북노회 소속의 선선남교회·철산읍교회에서 시무하였고 광복 후에는 부산지역에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