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명은 애시덕(愛施德). 서울 출신. 아버지는 홍정후(洪正厚)이며, 어머니는 한메리이다. 아버지는 개신교 초기신자로 갑오개혁 때 활약한 개화파였다.
1912년 이화학당 중등과를 졸업하고 이화보통학교 교사로 활동하였으며 1917년에는 이화학당 대학본과에 입학하였다. 재학중 만주에 세워진 무관학교를 지원하기 위하여 여성 중심의 동지회를 결성, 3·1운동 때에 많은 활동을 하였다. 1920년김활란(金活蘭) 등과 이화7인전도대를 조직하고 북한지역에 순회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1922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교사로 활동하는 한편, 1923년 9월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를 발족시키고 초대회장에 취임하였다. 같은해 미감리회 여선교사들의 후원으로 미국 테네시주 스카릿대학 신학부에 유학, 1926년 졸업한 뒤 곧 귀국하여 감리교신학교 교수로 취임하였다.
1927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 회장,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 이사로 활약하였으며, 1931년 기독교조선감리회 여선교회 초대회장으로 선출되어 광복될 때까지 역임하였다. 1935년 조선기독교청년회(YMCA) 간부인 이명원(李命遠)과 혼인하였다.
광복 후에는 일제말에 중단되었던 여자기독교절제회운동을 다시 전개하여 1961년 제6대회장으로 취임하였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이사, 대한부인회 서울본부 회장, 감리교총리원 부녀국장을 역임하였고, 말년에는 교회활동에 주력하였다. 1978년 독립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