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위부(偉夫), 호는 서담(西潭). 군위출생. 공조참의 홍의동(洪義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봉 홍우식(洪禹軾)이고, 아버지는 증한성부우윤 홍흔(洪訢)이며, 어머니는 홍혼(洪渾)의 딸이다.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이다.
1588년(선조 21) 사마시에 합격한 뒤 1592년 임진왜란을 맞아 부모를 정성껏 보호하였다. 이듬해 이원익(李元翼)이 체찰사로 파견되었을 때 수천언의 척화토적책(斥和討賊策)을 진언(陳言)하여 크게 참고하게 하였다.
1601년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지평·예조좌랑·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 통제영종사관(統制營從事官)으로 선임되어 통제사를 보좌하여 백성을 구휼하였으며, 전비를 강화하는 데 공이 컸다.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춘추관기사관·세자시강원사서·정언·지평 등 요직을 역임하면서 직언으로 시사를 바로잡았다. 광해군대에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후생교육에 힘썼다.
그 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에 다시 벼슬길에 나가 병조정랑·예천군수 등 내외직을 역임하였다. 정경세(鄭經世)·장현광(張顯光) 등과 친교가 두터웠다. 저서로는 『서담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