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군위 출신.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인 길림성 군정서 부속 흥업단(興業團)의 이만준(李萬俊)이 환인현(桓仁縣) 한교공회(韓僑公會)의 김인제(金仁濟)·최성기(崔聖基)·황문익(黃文益)을 데리고 1920년말 경 국내로 잠입하여 경상남도 밀양·양산, 경상북도 대구 등을 근거로 동지를 규합하였다. 그러자 양한위(梁漢緯)·권충락(權忠洛) 등과 같이 이에 가담하여 군자금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흥업단이 경영하는 백산학교(白山學校) 운영자금과 독립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달성·영천·봉화 등지에서 활동하다 일본경찰에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