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현구장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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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현구장도
화개현구장도
회화
작품
국가유산
조선 중기의 화가 이징(李澄)이 그린 기록화.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
분류
유물/일반회화/산수화/산수화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90년 09월 20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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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의 화가 이징(李澄)이 그린 기록화.
개설

199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담채. 세로 89㎝, 가로 5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여창(鄭汝昌)의 구장(舊莊)을 이징이 1643년(인조 21)에 그린 것이다.

내용

그림의 상단에는 ‘花開縣舊莊圖(화개현구장도)’라는 전서체(篆書體)의 표제가 적혀 있다. 중단에는 구장이 있던 화개현(花開縣)의 산수가 그려져 있다.

하단에는 정여창의 악양시(岳陽詩) 1수, 유호인(柳好仁)의 악양정시서(岳陽亭詩序)와 시, 이 작품의 제작 배경을 밝힌 신익성(申翊聖)의 후지(後識), 조식(曺植)의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과 정구(鄭逑)의 ‘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 중에서 정여창의 구거유적(舊居遺跡)에 관한 기사의 발췌 등이 신익성의 글씨로 적혀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일종의 기록화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 계회도(契會圖)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 그림은 이징에게 요청하여 그린 것이다. 이징이 직접 현지에 가서 실사하고 그린 것이 아니라 기록들을 참고하여 제작한 것임을 하단에 적힌 신익성의 발문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그 기록화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징이 만 62세 때인 1643년에 제작한 것이 신익성의 발문에 의하여 확실하게 밝혀졌다. 이로써 연기(年記)를 철저하게 결여하고 있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 화가였던 이징의 화풍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더 나아가서는 조선시대의 유교 문화의 양상을 고찰하는 데 많은 참고가 된다.

이징의 원숙한 산수화 솜씨가 잘 드러나 있는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격조가 높고 안견파(安堅派) 화풍의 17세기적 양상을 잘 보여 준다. 오른쪽 종반부(縱半部)에 무게가 치우쳐 있으면서 근경(近景)·중경(中景)·후경(後景)이 갖추어진 이른바 편파3단구도(偏頗三段構圖)를 이루고 있다. 좌우로 확산된 공간의 표현이 두드러져 조선 초기 이래의 안견파 산수화의 전통이 역연하다. 그러나 산과 바위의 표현에는 흑백의 대조가 엿보이는 등 절파적(浙派的) 요소도 가미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이징과 조선 중기의 산수화 및 유교 문화의 고찰에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한국 회화사 연구』(안휘준, 시공사, 2000)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1990 지정편(문화재관리국,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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