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7년(영조 23) 건립. 총 높이 495㎝, 비신의 높이 295㎝, 너비 104㎝, 두께 62㎝. 1980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일대가 주택가로 변하여 묘는 이장되었고, 신도비와 문인석만 남아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귀부(龜趺)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그 위에 첨석[檐石:처맛돌]을 얹었는데, 귀부는 비신에 비해 크고 둔중하지만 당시의 석비 조각으로는 우수한 편이며, 첨석의 용마루 · 처마 · 공포 조각도 섬세하다.
화산군은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의 손자로 부친은 해원군(海原君) 이건(李健)인데, 숙부 해양군(海陽君) 이희(李僖)가 아들이 없자 그의 가계를 이었다. 사망 후 1726년(영조 2)에 현록대부(顯祿大夫) 도총부도총관(都摠府都摠官)에 추증되었고, 1746년에는 좌의정 송인명(宋寅明)이 그의 효행을 임금에게 아뢰자 효간(孝簡)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비문은 송인명이 지었고, 글씨는 조카 서평군(西平君) 이요(李橈)가 조선화된 송설체(松雪體)풍으로 썼으며, 두전(頭篆)은 아들 낙창군(洛昌君) 이당(李檔)이 썼다. 비문에는 화산군의 가계(家系)와 성장과정 및 효성과 우애가 깊은 성품과 그의 행적이 적혀 있으며, 뒤쪽에는 세 아들 밀창군(密昌君) 이직(李樴) · 낙창군((洛昌君) 이당(李樘) · 능창군(綾昌君) 이숙(李橚)을 비롯한 자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