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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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 분 · 연지 등 화장에 쓰이는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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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크림 · 분 · 연지 등 화장에 쓰이는 물건.
내용

화장품과 향료제품을 총칭하여 향장품(香粧品)이라고 하는데, 이를 구분하지 않고 화장품과 향료제품을 따로 말할 때나 총칭할 때에도 역시 화장품이라고 흔히 일컫는다. 법규상(약사법 2조 8항)의 정의도 화장품을 광의로 해석하고 있다.

즉, “인체를 청결 또는 미화하기 위하여 도찰(塗擦)·살포 기타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물품으로서 인체에 대한 작용이 경미한 것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기능면에서도 화장품은 시각적인 면에 중점을 둔 것이고, 향료 제품은 후각적인 면에 중점을 둔 것이나 실제로는 구별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대부분의 화장품이 향의 우열에 따라 품질이 결정되므로 향료와 관련이 없는 화장품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화장을 하는 목적은 화장품에 의한 시각적인 몸치장만이 아니고, 화장할 때에 감미로운 향기를 즐기며 좋은 향취로 불쾌한 체취를 제거하고, 또 향기를 풍겨 남에게도 상쾌한 기분을 주는 데 있다.

이와 같이, 향료는 화장품의 중요한 성분이 되는 등 불가분의 관계이다. 또한, 화장품은 아름다움을 가꾸는 코스메틱스(cosmetics)와 청정·피부보호용 토일레트리스(toiletries)로 구분하나, 우리 나라 사람들은 두 가지를 모두 화장품이라고 표현한다. 그 원인은 화장품이라는 낱말이 개항 이후에 소개된 외래어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화장품 외에 화장에 필요한 도구인 거울·족집게·경대·머릿보 따위를 총칭하여 장렴(粧匲)이라 하였다. 그런데 장렴에 포함되는 화장품은 코스메틱에 해당하는 머릿기름·백분·연지·미묵·미안수 등이었다. 이밖에 피부의 때를 씻는 조두(澡豆)나 향수·향료 따위는 장렴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화장의 유래가 오래이므로 화장품의 유래 역시 오래이다. 그러나 화장이 미화 수단의 독립 개념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장기간 주술(呪術)의 일부 혹은 약학 및 의학의 일부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화장품 역시 약학 및 의학의 한 분야로 취급되었다.

또한, 부(富)의 편재와 엄격한 신분제도로 인하여 고대의 화장은 일부 계층에게 독점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던 중 13세기말에 파리와 로마에서 화장을 경멸하는 인식이 팽배하여 의학에서 분리되었는데, 오히려 그 이후에 화장과 화장품이 발달하게 되었다. 화장품의 수요가 특수층에 한정되고 경멸 당한 상황에서는 화장품의 제조 기술이 매우 치졸하였다.

백분·향료 따위는 맷돌에 갈아 체에 치고, 꽃잎을 압착시켜 향수를 만들고, 약을 만들 듯이 끓이거나 달이는 형편이었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위생 관리와 미화를 위한 화장품의 생산과 취급의 과학적인 발전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롯되었고, 화장품의 기업화는 20세기에야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사정은 우리 나라에서도 비슷하였다. 피부의 보호와 미백 수단이 일찍이 행하여졌고, 남다른 미의식이 이미 삼국시대 초기에 생성되어 화장술과 화장품이 발달하였다. 화장 행위에 대하여도 서양과 달리 경멸하지 않았지만 화장품의 산업화과정은 매우 더디었다. 그 원인은 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때문이다.

시장은 자신의 잉여 생산품을 팔거나 교환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는데, 생필품 외의 교역은 매우 미미하였다. 또, 화장품의 제조가 용이하므로 대부분 자가제조 혹은 문중(門中)에서 제조하였다. 향수는 향기 짙은 식물을 압착시켜 만들었고, 백분과 조두는 맷돌에 갈아 체에 쳐서 만들었다.

옛날에는 대가족 제도였으므로 화장품뿐 아니라 대부분의 생활 필수품을 자가 제조할 수 있었다. 자가자급경제체제(自家自給經濟體制)도 한 원인이 된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부족한 물품의 구입을 억제하고 생산품 위주로 생활하였기 때문에, 화장품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활필수품을 자가 제조하였다.

따라서 수요가 한정되었으므로 기술의 혁신이 완만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관장(官匠) 및 사장(私匠)이 생산품을 시전(市廛)에 팔더라도 상표나 포장에 등한한 원인이 있다. 이와 같은 조건하에서도 우리 나라의 화장품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어서,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의 화장품 제조 기술이 일본보다 우위였다.

고려시대에는 향유(香油)가 수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일본에서 화장수(미안수) 제조기술을 모방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랜 쇄국 정책 끝에 문호 개방을 함으로써 다른 재래 산업이 쇠퇴한 것처럼 재래 화장품 산업도 쇠퇴하고 말았다. 우리 나라의 옛 화장품을 대강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① 피부용 제품 : 조두(세정제)·미안수(화장수)·면약(크림에 해당)·분백분·색분(色粉 : 백합의 붉은 꽃수술의 분말을 채취하여 사용)·물분·볼연지·입술연지·미묵(眉墨 : 눈썹·속눈썹용) 등이 있었다. 또, 팩(pack)에 해당하는 화장용품도 있었는데, 얼굴을 곱게 하기 위하여 꿀찌꺼기를 얼굴에 골고루 펴 발랐다가 몇 분 후에 떼어내었다.

또 다른 팩 방법은 짓찧은 마늘에 꿀을 섞어 하룻밤 재운 뒤 얼굴에 골고루 펴 바르는 것인데, 이로써 얼굴이 희어지고 기미·주근깨가 제거되었다고 한다. 또, 윤안향밀(潤顔香蜜)이 있었는데, 이것은 꿀찌꺼기에 향을 가미한 것으로서 얼굴을 윤기 나게 하는 영양크림과 흡사하였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② 모발용제품 : 머릿기름(整髮油)·밀기름(着髮油)·염모제(染毛劑, 제법은 미상) 등이 있었다. 창포에 쑥을 넣어 함께 삶은 것은 요즘의 샴푸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다. ③ 방향제품 : 향수·향료가 있었다. 향료는 주머니에 담아 패용하였는데 장신구 겸용이었다. 향료는 직접 뿌리는 외에 향로에 피워 훈향(薰香)을 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미루어본다면, 기능이 세분되지 않고 명칭이 다를 뿐 현재와 거의 같은 여러 가지 화장품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멋 5000년』(전완길, 교문사, 1980)
『한국화장문화사(韓國化粧文化史)』(전완길, 열화당,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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