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산성 ()

목차
관련 정보
관산성
관산성
건축
유적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성곽. 산성.
이칭
이칭
고리산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성곽. 산성.
내용

고리산성(古利山城)이라고도 한다.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의 산성을 서쪽 산마루 끝에 두고 산능선을 따라 1∼1. 5㎞ 간격으로 5개의 보루(堡壘)가 있다. 옥천과 대전 사이의 교통로를 차단하는 위치에 있다.

가장 서쪽의 성터는 내외협축(內外夾築)의 성벽이 높이 4m쯤 남아 있고, 북동쪽에 경사가 완만한 비탈을 반달모양으로 에워싸고 문터가 있다. 성 안에는 지름 8m의 커다란 웅덩이가 있으며, 성벽의 둘레는 300m쯤이다.

이 것을 중심으로 동북쪽으로 봉우리마다 석축의 보루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모두 테뫼식의 작은 규모로 둘레가 150m 내외이다. 자연할석을 가지런히 쌓아올린 성벽은 거의 수직이며, 가파른 산기슭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성 안에서는 삼국 시대의 토기편과 기와편이 발견되기도 한다.

553년(성왕 31) 백제가 나제동맹으로 한강유역을 되찾은 뒤, 신라 진흥왕이 일방적으로 모든 영토를 차지한 데 분개하여 신라로 쳐들어갔다가 왕이 전사하였다는 곳이 이곳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 성을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리산(古利山)으로 비정하고 있다.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금강의 상류지방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전부근고대성지고(大田附近古代城址考)」(성주탁, 『백제연구』 2,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 1971)
『백제고리산성고(古利山城考)」(정영호, 『백제문화』 7·8, 공주대학백제문화연구소, 1975)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