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회덕(懷德). 자는 신백(信伯). 생원 황균(黃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목사 황삼성(黃三省)이고,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 황준남(黃俊男)이며, 어머니는 송응생(宋應生)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 생원·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을 거쳐 이듬해 대교가 되었고, 이어 봉교로서 설서를 겸임하였다. 1617년 정언, 이듬해 겸문학·이조정랑·응교·장악원첨정·겸필선·겸보덕을 역임하고, 이어 전한에 이르렀다.
1613년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의 사주를 받아 이위경(李偉卿)·한정국(韓定國) 등과 함께 사학(四學)의 유생을 이끌어 광해군의 폐모론을 앞장서서 주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주살(誅殺)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