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학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의병을 조직하여 항일유격전을 펼쳤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된 독립운동가.
이칭
  • 영문(英文)
인물/근현대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6년(고종 13)
  • 사망 연도1931년
  • 본관창원(昌原)
  • 출생지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재홍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8월 12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의병을 조직하여 항일유격전을 펼쳤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된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영문(英文).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 출생. 황재모(黃在模)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것을 통분하고 황사중(黃士中)·한성순(韓性純)·고견(高堅) 등과 협의하여 의병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였다.

1908년 포수 100여 명을 규합, 백운산(白雲山)에서 기병하고 각지에 통문을 보내어 모병함으로써 수백 명의 의병부대를 편성하였다. 광양군 진월면 망덕만(望德灣)에 일본선박 수십 척이 집결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야밤에 기습공격하여 침몰시키고 무기 다수를 노획하였다.

그 뒤 옥곡면(玉谷面)을 근거로 항일유격전을 전개하였다. 또, 광주(光州)의 일본군 수비대본부를 기습공격하여 무기 다수를 노획하였으나 많은 동지를 잃었고, 일본군의 체포망을 피하여 만주로 망명하였다.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밀령을 받고 군자금 모금차 국내에 입국하다가 신의주에서 붙잡혀 3년형을 선고받고 광주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24년 출옥하였으나 옥중에서 받은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1931년에 죽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유공자공훈록』1(국가보훈처, 1986)

  • - 『독립운동사자료집』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신재홍, 한국민족운동연구소, 1971)

  • - 『독립운동사』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 -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