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상주 출신.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일본 마쓰야마고등학교[松山高等學校]를 거쳐, 1929년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공학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미국 포드자동차회사 일본지사에 3년간 근무한 뒤 귀국하여 동아일보사 공장장으로 일하였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대회에서 손기정(孫基禎)이 마라톤에서 우승한 보도를 하는 과정에서 『동아일보』가 일장기를 말살하고 태극기를 넣은 이른바 ‘동아일보 일장기사건’이 발생하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경성방직주식회사 공장장이 되었다.
광복 후 1947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으로 옮겨 1954년에는 학장이 되었으며, 1955년부터 서울대학교와 미국 미네소타대학과의 협동으로 시작된 서울대학교재건발전계획에서 공과대학 재건의 주역을 하였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은 이 계획에 따라 미국 국제협력처(ICA: 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원조를 받아, 5년간 350만 달러 상당의 실험기기, 교수재교육 비용 및 도서구입비에 200만 달러, 초빙교수·고문관 지원금으로 200만 달러 등 약 750만 달러 받아 국내 공학계열 대학 중 서울대학교가 가장 빨리 한국전쟁의 피해로 부터 복구되었고, 이 같은 성과는 당시 학장이었던 황영모의 공헌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