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모 ()

과학기술
인물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을 역임한 학자. 기계공학자, 과학교육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7년
사망 연도
1959년
출생지
경상북도 상주군
관련 사건
동아일보 일장기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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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을 역임한 학자. 기계공학자, 과학교육자.
생애 및 활동사항

경상북도 상주 출신.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일본 마쓰야마고등학교[松山高等學校]를 거쳐, 1929년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공학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미국 포드자동차회사 일본지사에 3년간 근무한 뒤 귀국하여 동아일보사 공장장으로 일하였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대회에서 손기정(孫基禎)이 마라톤에서 우승한 보도를 하는 과정에서 『동아일보』가 일장기를 말살하고 태극기를 넣은 이른바 ‘동아일보 일장기사건’이 발생하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경성방직주식회사 공장장이 되었다.

광복 후 1947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으로 옮겨 1954년에는 학장이 되었으며, 1955년부터 서울대학교와 미국 미네소타대학과의 협동으로 시작된 서울대학교재건발전계획에서 공과대학 재건의 주역을 하였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은 이 계획에 따라 미국 국제협력처(ICA: International Cooperation Administration) 원조를 받아, 5년간 350만 달러 상당의 실험기기, 교수재교육 비용 및 도서구입비에 200만 달러, 초빙교수·고문관 지원금으로 200만 달러 등 약 750만 달러 받아 국내 공학계열 대학 중 서울대학교가 가장 빨리 한국전쟁의 피해로 부터 복구되었고, 이 같은 성과는 당시 학장이었던 황영모의 공헌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명석하고 치밀한 기계계의 선구자」(염영하, 『과학과 기술』, 1983.9)
「삼연신유록」(안동혁, 『한국과학사학회지』2-1, 1980)
집필자
현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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