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자휘(子輝), 호는 당촌(塘村). 증 좌의정 황윤공(黃允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충청도병마절도사 황진(黃進)이고, 아버지는 황정열(黃廷說)이며, 어머니는 김극수(金克修)의 딸이다. 정홍명(鄭弘溟)의 문인이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636년 병자호란 때 남원에서 창의, 의병 수천 명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을 향하여 올라오다가 과천에서 적군을 만나 싸워 승전하였다. 청나라와 화친이 맺어지자, 군사들을 해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1638년 정시문과에 장원급제, 정언이 되었는데,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에 앞장섰던 김상헌(金尙憲)이 주화론자(主和論者)들로부터 배척당함을 보고 상소, 구제하다가 파직되었다.
1649년 효종 즉위와 함께 다시 등용되어 함경도도사·평양서윤 등을 역임하였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남원 풍계사(楓溪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역대 충절인들의 사실을 모은 『정충록(旌忠錄)』이 있다.